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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동정

어느 사회복지공무원의 수기

  • 작성자 사회복지학과
  • 작성일 2021.10.19
  • 조회 5314

사회복지전담공무원으로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꼭 10년째 됩니다이제 서서히 일에 지칠 때도 되었다는 생각도 들지만한 편으로는 그동안 일을 하면서 나는 정말 사회복지사로서 합당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업무에 임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생깁니다그래서 근무하면서 어떤 보람이 있었는가를 사람들이 물어오면 선뜻 대답하기가 힘이 듭니다

 사회복지직공무원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사람이면 대개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욕구와 문제에 부응할 수 있는 지원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저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그러나 한해 두해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를 지원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의심하고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에 근로능력조사소득재산조사 등 각종 지원에 필요한 소득 인정액을 조사하다보면 이 대상자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일을 할 능력이 충분한데 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가를 따지게 되고, ‘저렇게 사니 저 꼴로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지라고 하는 부정적인 시각만 커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일을 하면서 이런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상자를 바라보는 저를 볼 때면초심을 잃은 저 자신에게 실망하는 저를 함께 보게 됩니다

 몇 년 전 저 자신에게 가장 크게 실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북부동에 근무할 때였는데기초생활수급자였던 한 알콜중독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돈을 더 달라쌀을 더 달라하며 괴롭혔습니다그런데 그렇게 저를 괴롭히던 아저씨가 제가 장유면으로 전근을 가게 된 후 얼마 되지 않아 또 전화를 해 그동안 괴롭혀서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저는 그런 소리마저 귀찮게 여겨져 됐으니까 이제 제게 다시 전화하지 마세요하고 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저씨가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그 순간 아그 전화를 받았을 때 조금만 친절하게 응대를 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과 함께 사회복지사로서의 사명감을 소홀히 한 제 자신에게 정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을 하다보면 소소하지만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매일 술 마시고 찾아와서 괴롭히는 사람이어서 다시는 오지 말았으면 하다가도 사탕을 하나 가지고와서는 살짝 내미는 사람다른 민원인으로부터 심한 욕설 등의 폭력을 당하고 있을 때 그래도 내 편에서 흑기사가 되어주는 아저씨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돈인데도 마치 내가 주는 돈인 것처럼 내게 매번 고맙다고 인사하는 할아버지자신의 텃밭에서 가꿨다며 오이나 호박 등을 따다주시는 할머니 등 모두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또한 보람과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회복지직공무원으로 일을 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각종 사업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동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직공무원은 사회복지업무와 관련해서는 만능인이 되어야 합니다노인장애인아동기초생활수급자 등 관련 사업에 대한 기본적인 지침서만 해도 20권이 넘습니다그것에 더하여 각종 세부 사업들까지 포함하면 다 숙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회복지직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중요한 것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지원 가능한 서비스를 최대한 연계하고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각종 사업의 기본지침을 파악하는 데만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그것에 더하여 다른 부처에서 시행하는 각종 사업 및 민간에서 행해지고 있는 서비스나 프로그램들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사회복지직공무원들을 보고 항상 탁상행정만 하고 대상자의 실질적인 절박함은 소홀히 한다고 합니다그러나 실제로는 업무지침을 익히고새로운 시책에 맞추어 업무를 처리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입니다여기에 잦은 복지전달체계 개편과 더불어 시스템의 변경 등은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새로운 과업을 부과해 안정적인 직업인으로 정착을 할 수 없게 합니다.

 일단 사회복지직으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서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침숙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그리고 타 부처나 각종 민간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서비스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또한 사무실 업무로 바쁜 중에도 나름대로 발로 뛰는 행정을 구현(?)하려고 일주일에 하루는 무조건 가정방문을 하는 날로 정해 놓고 책상머리에서 서류만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들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도 합니다그게 이런저런 이유로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요.

 마지막으로 일을 하면서 사회복지공무원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점은 법규나 지침에 의하여 행해지는 업무에만 국한하지 말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복지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흔히 민간 분야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은 행정에는 가용 재정이 충분하여 대상자에 대한 지원을 충분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정에서는 법적으로 정해 놓은 예산사업에 근거한 서비스만을 제공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예를 들어 기초생활수급자는 생계비의료급여교육급여 등 법적으로 인정된 급여에 대한 지원만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사람의 욕구라는 것이 최저생계비로만 충족될 수 없고즉 먹고입고자고하는 기본적인 욕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 부가적인 많은 욕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사회복지공무원은 그러한 부가적인 욕구들에 부응하는 서비스를 최대한 찾아서 연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10년간 사회복지직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느낀 점들을 적어 보았습니다솔직히 저는 사회복지학부의 학생시절부터 사회복지에 대한 정체성이나 사명감이 충만한 학생도 아니었고 사회복지직공무원이라는 직업도 어떤 큰 뜻이 있어서 선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또한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제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많았습니다그래도 10년의 세월은 그냥 돌아오지 않는 물처럼 흘러만 간 것은 아닌 가 봅니다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그들이 나를 찾아와 나의 도움을 청하고그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되고도움을 받고 난 후 그들의 환해 진 얼굴을 보게 되고그러한 것들이 사회복지공무원으로서의 하루하루를 지탱해주는 큰 힘입니다.